[서정칼럼]서정침례교회 윤종기담임목사, 깍두기가 그리운 시대

김두일기자 | 입력 : 2019/04/14 [16:02]

▲ 서정침례교회 윤종기 담임목사     ©운영자

어릴 적 동내 놀이터에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던 시절이 기억난다. 놀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동네 어귀의 마당은 가장 신나는 오락실이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은 가방을 거실에 내동댕이친 체 그곳으로 모였다. 그곳에서 술래잡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오징어 가위 상-우리 동네에서는 그렇게 불렀다-과 같은 놀이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특별히 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하는 경우, 인원 비율이 맞지 않거나 혹은 같이 끼워 주기에는 자격이 안 되는 어린 동생이 함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아이를 “깍두기”로 임명한다. 깍두기는 어느 편에 서서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 그리고 그가 잘하고 못하고는 승패에 영향을 주진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깍두기가 놀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순서를 배려하고 기다려준다. 

깍두기와 요즘 시대의 왕따는 분명 다르다. 왕따는 소속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아 자연스럽게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는 존재라면, 비록 깍두기는 분명한 소속감을 가지고 공동체에 참여하며 공동체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존중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승패가 갈리는 긴박한 순간에도 깍두기 자신의 차례가 되면 게임에 참여하도록 구성원들이 기다려 준다. 또한, 깍두기가 제 역할을 못 해 팀이 패배해도 그를 비난하거나 제외하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 정원이 맞거나 본인의 의사가 분명하면 언제든 깍두기가 아닌 정식 멤버로 수용됐다. 

그런 의미에서 김치를 담글 때 남은 무를 버리기 아까워 대충 잘라서 이미 버무려진 김치 사이에 넣어주었던 것이 “깍두기”의 유래인 것처럼, 자격 상 어느 팀에서도 제 역할을 하기엔 미흡하지만 그러나 그도 구성원으로 존중해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함께 팀원으로 세워 준 이를 “깍두기”로 명명한 것은 기가 막힌 작명이라 생각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 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것이 지성, 사회성, 신체조건, 영성 등 어떤 부분이든 개인 간에 차별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실 때 “주인이 재능을 따라”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도 인간 간의 차이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안타까운 것은 인간의 차이가 이 세계를 계급화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라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탁월한 소수의 엘리트가 이 세상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자연스럽게 소수의 엘리트 그룹에 집중하며 그들을 추종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에는 엘리트에 대한 추종과 더불어 깍두기에 대한 배려도 함께 있다. 건강한 공동체는 개인적인 탁월성을 뛰어넘어 깍두기에 대한 배려에 인색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들을 수용하고 배려할 줄 아는 유연한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라는 말이다.

특별히 배추김치 속에 아무렇게나 박혀있는 깍두기를 배추김치보다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시대가 다시 깍두기들이 존중받는 사회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깍두기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그 바람이 실현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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