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칼럼]서정침례교회 윤종기담임목사, 사각지대가 없는 인생

운영자 | 입력 : 2019/08/01 [18:38]

▲ 서정침례교회 윤종기 담임목사     ©운영자

 

 

자동차의 사이드미러는 옆 차선에서 달리고 있는 차를 파악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별히 사이드미러는 내 차의 차로를 옮길 때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다.

그런데 사이드미러에는 약점이 있다. 그것은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옆 차로에 차가 있는데도 고개를 돌려 옆 차로를 보지 않으면 거울 속에서는 그 차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지대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차로를 변경하다가 사각지대에 있는 차를 보지 못해 그만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사각지대를 보완한 보조 미러를 추가로 장착한 차량도 있다.

사각지대로 인한 사고 위험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다른 차가 무리한 차선 변경을 시도해도 그들을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최근 난폭운전이 사회적 갈등과 도로 사고의 중요한 위험 요소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공중파의 시사프로에서 이 난폭운전과 그에 따를 보복 운전에 대하여 심층 있게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고의적으로 불법을 행했고 그것 때문에 분노해서 보복 운전을 했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으며 심지어는 상대방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모른 채 보복 운전을 당했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분명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는 있다. 어쩌면 그 사각지대로 인하여 오해가 생기도 그 오해가 갈등이 되어 인간관계에 고통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 사각지대를 인정하고 서로의 실수를 배려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행복한 만남의 질주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각지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과 오해를 갖는다면 그 관계는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

죄악 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이 사랑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신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연약한 우리의 한계를 수용해 주시고 그 다음에 은혜의 손길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처럼 온전한 사랑 온전한 만남은 서로의 한계(연약함)를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이 그 만남 가운데 사이드미러처럼 설치돼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율주행 차가 있어 운전자가 더 이상 사각지대에 대한 공포 없이 편안히 운전하는 시대가 올지라도, 인생은 그리고 인간은 결코 자율주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죄의 사각지대, 연약함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고 조심히 인생 드라이브를 해야 할 것이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서 5장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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